한녀 생태계

고딩 때 배구 3년 했는데 여자 팀스포츠 개빡세다

bbakku 2021. 8. 27. 10:57

volley ball! 

 

 

올림픽 때 여자배구의 인기가 엄청 났기 때문인지, 여자들 사이에서 팀스포츠에 대한 환상이 커진 것 같다. 특히, 여성들 끼리 서로 힘이 되어주자는 구호가 판치는 이 넷세상에서 여성 팀스포츠를 통해 여성들 간의 우애와 끈끈함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. 주변에 농구 동호회 찾는 사람, 배구 어디서 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이 제법 있는 데다가 특히 배구 얘기를 꺼내면 다들 눈이 반짝거린다. 

 

나도 여자들에게 팀스포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도 배구를 좋아한다. 그리고 난 고딩 때 배구를 3년 했다. 그래서 웃기게도 팀스포츠에는 협력, 의리, 패배해도 아름다운 이야기 따위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. (남자 팀스포츠는요? 모른다. 안 해봐서. 해본 사람이 얘기해주길 바란다.) 

 

우리 한녀들이 팀스포츠를 했을 때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는 건 다음과 같다. 

 

1. 너무 싫은 년들이랑도 한 팀이 되면 무조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다. 손절이 밥 먹듯이 쉬운 이 시대에도 팀스포츠를 한다면 빠지기 쉽지 않다. 걍 시합 일정 맞춰 같이 뛰어야 한다. 오로지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나머지 사적인 감정들은 꾹꾹 눌러 담은 채 시합에만 집중하는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. 물론, 시합이 끝난 후에 머리채 잡고 싸우는 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겠지.

 

아, 그리고 아름다운 패배는 없다. 지면 기분 더럽고 팀 분위기도 개박살난다. 왜냐? 이기려고 시합하는 거지, 아름답게 패배하려고 시합하는 거 아니거든 ㅋㅋㅋㅋ 

 

2. 지적질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다. 우리 여성들에겐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데, 그게 뭐냐면 서로 좋은 말만 해주는 것이다. 별로 안 예뻐도 우린 무조건 "예쁘다"고 말하는 거다. 친구 남친 개구려도 무조건 말은 "니 남친 멋있따"인 거다. 그렇게 안 해주면 삐치거나 맘 상하는 한녀들이 수두룩 빽빽인 이 나라에선 곱고 아름다운 말 주고받기 운동은 유구한 전통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.

 

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면 그게 안 된다. 이겨야 하기 때문에 오직 칭찬만 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. 승부의 세계에선 예쁜 것도, 니 남친이 어떤 놈인지도 아~~~무 상관이 없다. 오로지 실력, 그뿐이다. 너의 실력을 끌어올려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면 지적질 할 수 있다.  

 

팀스포츠 하면 일본 애니에서만 보던 아름다운 승리, 감동적인 화합 등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한녀들을 보면서 아, 정말 우리 한국 여자들이 팀스포츠를 안 해봤구나...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. 여자들이 팀스포츠를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즐기면서 너무 싫은 사람하고도, 나를 지적질하는 사람과도 목표를 가지고 팀을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해보길 바란다. 

 

이게 중요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, 내가 여초 회사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. 일단 일적으로라도 지적하는 말, 부정적인 말들을 잘 못 견디는 여자들이 정말 많다. 그것이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. 때문에 무조건 자신의 상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변명... 끝없는 변명과 항변이 이어지더라고.

 

다시 한번 얘기하지만, 니 감정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. 감정이 상하든 말든 그것은 본인의 사정이지, '너의 감정'이 상하기 때문에 할 말을 못 하는 것은 옳지 않다. 내가 고딩 때 팀스포츠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싸가지가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필요한 말이 있으면 언제든 했고, 늘 한녀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........ 뭐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는 것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