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는 이야기

수능 100일 전부터 문제집 하루 한 권 푼 사촌

bbakku 2021. 7. 24. 22:44

 

내 사촌 오빠는 사실 공부를 그렇게 소름끼치게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. 그런데 결과가 늘 소름쳤다. 고등학교 때에도 공부를 하도 안 해서 학교에 부모님이 호출됐을 정도다. 그런데 오빠는 서울대를 들어갔고, 집안 식구들은 경악했다. 

 

나중에 내가 고2가 됐을 때 오빠한테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봤는데, 딱 수능 100일 전에 대학 못 갈까 봐 무서워졌고 그때부터 매일 문제집을 한 권씩 풀었다는 것이다. 그니까 문제집 100권 풀고 수능 봤다는 얘기다. 이걸 내가 고3 때 해봤는데 하루도 성공을 못했다. 한번 해보면 안다. 미친 짓이다. 도저히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. 절반 풀면 다행이지. 

 

그러곤 아 역시 오빠는 걍 비상한 사람이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, 얼마전 산책을 하다가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를 깨달았다. 애초에 목표를 문제를 잘 푸는 데에 있지 않았던 것 같다. 그냥 무조건 한 권을 푸는 데에 포커싱을 했던 거 같다. 이렇게 발상을 좀 바꾸면 어떻게 되냐, 못 푸는 문제 그냥 지나친다. 잠깐 고민했는데 문제 안 풀리면 바로 다음 문제로. 그렇게 쭉 시간에 맞춰서 오직 그 문제집을 끝까지 훝는 게 가능해진다. 그리고 아마 공부는 나중에 채점하고 답안을 보면서 문제를 '푸는' 것이 아니라 정답을 이미 안 상태에서 이해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. 처음에는 이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말 하루 한 권을 해치웠다면 엄청난 문제 은행 데이터를 접하는 거고 아마 시간이 갈 수록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오답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여갔을 것이다. 이런 식이면 가능했겠더라고. 

 

정답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'한 권'을 해치운다는 목표를 붙잡았던 결과가 서울대였던 건데 나는 이걸 내 인생에도 적용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난 하나하나 넘어가는데 아주 디테일 한 것까지 다 이해하고 싶어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너무 들고 결국 중도 포기가 발생한다. 그냥 목표를 딱 정해두고 디테일은 좀 덜어내는 편이 목표에 다다르는 데에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.  

 

추신. 물론 사촌오빠는 머리도 무척 좋았던 걸로 보인다. 사시를 한 번에 합격했다. 그럼 이만.